고 이상수 교수 장손 한국 입국하여 가족들과 성묘.

날씨가 좋아서인지 풀이 엄청나게 자라 있음.

고 이대벽 - 고 박수암 - 고 서숙원 장로 - 고 이상수 교수 순으로 배치된 것도

다 고인의 주장에 따른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후손들이 남-녀 순서가 헷갈릴지도 모르겠다. 





'이상수 교수 > 2010.5.7 소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10.3 성묘  (0) 2015.10.04
기독교인공원묘지  (0) 2015.09.28
2014년 10월 3일 성묘  (0) 2014.10.14
장례식(KAIST 장) 프로그램  (0) 2010.06.07
이민희 교수님 추모사  (0) 2010.06.07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mperial College London, 1955.6~1959.6)


https://www.imperial.ac.uk/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mperial College London) 혹은 줄여서 임페리얼 칼리지는 영국 런던의 부촌인 켄싱턴·첼시 (Royal Borough of Kensington and Chelsea)에 위치해 있는 자연과학, 공학, 의학분야 특화 대학교이다. 


1907년 개교한 연구 중심 대학으로서 2013년 기준 전체 교수진 중 72명이 영국 학자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인 왕립학회 펠로쉽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모두 14명의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유명한 동문으로는 페니실린 을 만든 알렉산더 플레밍 경, '사실의 왜곡에 눈 감을 바엔 원숭이를 조상으로 섬기겠다'는 말로 유명한 과학적 진화론의 선두주자 토머스 헉슬리, 2013년 힉스 보존이론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피터 힉스, 타임머신, 투명인간, 유전자 조작 등의 개념을 창안한 작가 허버트 조지 웰즈, 록 밴드 퀸의 기타리스트이자 천체물리학자인 브라이언 메이 등이 있다.


영국 국왕 에드워드 VII에 의하여 1907년 이공계와 의학에 중점을 둔 대학교로 설립되어, 런던 대학교(University of London)연합체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지만, 2007년 7월에 공식적으로 탈퇴하여 지금은 완전히 독립적인 대학이 되었다. 2002년까지 “Imperial College of Science, Technology and Medicine”이라고 불리었으나 이후 공식명칭이 변경되어 “Imperial College London,” 짧게는 “Imperial”이라 불리고 있다.






[참고자료]

엔하미러 위키

https://mirror.enha.kr/wiki/%EC%9E%84%ED%8E%98%EB%A6%AC%EC%96%BC%20%EC%B9%BC%EB%A6%AC%EC%A7%80%20%EB%9F%B0%EB%8D%98

레이저 이야기

현대과학신서 41

J.M.캐럴 (지은이)  이상수 옮김

전파과학사 | 1976-03-01 정가 8,000원

234쪽 | 182*103mm (B40) | 124g | ISBN(13) : 9788970443416



레이저. 만화영화에서는 적을 무찌르는 최후의 무기로서 동력원을 온통 쏟아부어야 만들어지던 무기의 하나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실상 레이저는 우리의 산업에 없어서는 도구로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지금도 레이저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가 진행 중인 상태이다.

이 책에서는 레이저의 정의, 발견, 용도 등 레이저라는 것 하나만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날이 쓰임새를 확장해가고 있는 레이저에 대해 이제 만화영화적인 상상력은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때가 아닐까.

머리말
1. 레이저란 무엇이며 어떤 일을 하는가?
2. 레이저는 어떻게 발명되었는가?
3. 전시와 평화시의 레이저
4. 레이저 만들기
5. 레이저의 새로운 활용분야
결론
참고문헌
찾아보기
역자후기


원서 John Millar Carroll, The Story of the Laser, Dutton (1964)

  • Hardcover: 181 pages
  • Publisher: Dutton; 1st edition (1964)
  • Language: English
  • ASIN: B0006BLTW6
  • Package Dimensions: 8.1 x 5.6 x 0.7 inches
  • (사진출처 아마존)

[참고자료]

알라딘 책소개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44341X


아마존 책소개

https://www.amazon.com/gp/product/B0006BLTW6/ref=ox_sc_saved_title_1?smid=A1QJ4UH6FW3UH1&psc=1

레이저와 홀러그러피 - 간섭성 광학서설

현대과학신서 48

윈스톤 E. 칵 (Winston E. Kock 지은이), 이상수 (옮긴이)

전파과학사 | 1974년 12월  8,000원

178쪽 | 188*128mm (B6) | 178g | ISBN(13) : 9788970443485



[목차]


제1장 파동의 무늬인 홀러그램
제2장 파동의 간섭성
제3장 레이저
제4장 파동의 회절
제5장 윤대판
제6장 홀러그램의 성질
끝말
더 읽기를 권하는 책
후기


[원서]

Lasers and Holography: An Introduction to Coherent Optics Paperback – January 1, 1969

by Winston E. Kock (Author)


Paperback: 144 pages

Publisher: Butterworth-Heinemann 

Language: English

ISBN-10: 1483249239

ISBN-13: 978-1483249230

Product Dimensions: 5.2 x 0.3 x 8 inches




[참고자료]

알라딘 책소개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443487

현대과학신서 시리즈 48권. 무궁무진한 응용가능성을 갖는 현대물리학의 총아 레이저의 특징 및 신비스런 홀러그러피를 정확하고 평이하게 해설하여 대학생은 물론 전문가에게까지 유용한 입문서이다.


아마존 책소개

https://www.amazon.com/Lasers-Holography-Introduction-Coherent-Optics/dp/1483249239/ref=sr_1_fkmr0_4?s=books&ie=UTF8&qid=1549289607&sr=1-4-fkmr0&keywords=Winston+E.+Koc+holography

박학장님, 이박사님, 정박사님과 함께 성묘









'이상수 교수 > 2010.5.7 소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독교인공원묘지  (0) 2015.09.28
2015년 8월 8일 성묘  (0) 2015.09.27
장례식(KAIST 장) 프로그램  (0) 2010.06.07
이민희 교수님 추모사  (0) 2010.06.07
노제 KAIST 홍릉캠퍼스  (0) 2010.06.03

고 이상수 교수님 1999년 10월 11일 동아일보사 18층 강당에서 진행된 제 13회 인촌상 시상식에서 학술부문 수상.


인촌기념회 누리집

http://www.inchonmemorial.co.kr/








'이상수 교수 > 2010.5.7 소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년 8월 8일 성묘  (0) 2015.09.27
2014년 10월 3일 성묘  (0) 2014.10.14
이민희 교수님 추모사  (0) 2010.06.07
노제 KAIST 홍릉캠퍼스  (0) 2010.06.03
SPIE - In memoriam: Sang Soo Lee  (0) 2010.05.31
동위원소회지(한국동위원소협회 : KRA) 원고

* 인 물 탐 구 *
이 상 수(李 相 洙)박사 (1925~ )

新溟(신명) 李相洙박사님은 1949년 서울대 문리과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신 후 서울대 강사와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시던 중 1955년 영국정부 국비장학생으로 선정되어 London대학 Imperial College 대학원으로 유학의 길을 오르게 되였으며, 1959년 한국인으로선 처음으로 이학박사(광학전공) 학위를 취득하였다. 1960년 귀국하여 지금의 한국원자력연구소의 전신인 원자력원(원장 김법린) 원자력연구소에서 기초연구부장에 이어 물리학연구실장에 임명을 받으면서 원자력연구와 관리의 인연을 맺게 되였다.


당시 물리학연구실에서는 원자력과 관련한 기초물리학연구과제로서 원자로재료의 중성자 흡수단면적측정연구, 핵반응 및 구조연구, 열중성자 회절 및 산란연구, 중성자발생장치 설계 제작 및 발진연구, 핵분광학연구, 방사선 계측연구, 로재료의 방사선 상해연구, 고체물리학 실험연구, 핵 및 입자물리학 이론연구, 광학연구 등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었다. 이상수실장님은 물리학연구실의 연구방향과 추진계획 그리고 연구성과 등을 총괄하는데 간단없이 전력을 다하였으며 국내 원자력 관련 물리학의 기초 및 응용연구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큰 기여를 하셨다.


더욱이 본인의 전공분야인 광학연구에서는 기초와 원자력과의 응용을 병행하는 방침으로 광학실험실을 이끌며, 당시로서는 국내 최초로 광학연구실 다운 실험실을 갗추어 놓았다. 자체 설계제작한 간섭계를 이용하여 원자스펙트럼의 선폭측정연구, 원자의 초미세구조의 분광학적 연구, Co-60 동위원소 또는 TRIGA-II 원자로에서 방출하는 Čerenkov복사의 이론적 해석과 원자로 출력과의 상관관계 연구, 방사선 계측에 이용하기 위한 CaF₂, LiF, Muscovite, 등의 방사선 상해 및 열형광 방출에 관한 이론 및 실험연구, 다중반사간섭법에 의한 박막광학연구, He-Ne 혼합기체 중성원자 레이저와 고체 Ruby 레이저의 설계제작과 응용연구, Imaging Spark Chamber 연구, 원자핵과 Gamma-ray 공명연구 등을 수행하여, 원자력연구와 광과학과의 융합연구 그리고 실험연구의 국내 토착화에 큰 힘을 쏟았다. 이상수박사님은 원자력 관련 수행연구업적을 일찍이 인정 받아 제6차 원자력학술회의에서 원자력원(원장 윤일선박사)으로부터 우수학술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상수박사님은 1964년에 레이저연구에 착수하였으며, 이는 당시 누구도 구상치 못했던 획기적 연구과제로서 국내 레이저연구의 첫 걸음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이같은 이박사님의 선견은 지금도 한국원자력연구소의 후진들은 활발한 레이저기초 및 응용연구를 계속하며, 다대한 연구성과를 얻어 오고 있을 뿐 더러, 뒤이어 국내 많은 대학과 연구소 그리고 산업체에서도 레이저응용연구에 적극 동참하는 파급효과를 갖게 되였다.


1초를 아끼시며 바쁜 나날을 보내시던 중에서도, 이박사님은 1964년부터 1년 동안 Harvard대학 Lyman Lab.에 연구원으로 초빙되어 N.F. Ramsey교수와의 공동 연구로 양성자 또는 원자핵의 스핀과 분자회전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룰 수행하였고, 귀국하면서 국내 원자력에 필요한 많은 과학기술정보와 관련 과학자 및 전문가를 만나 학술적 교분을 두텁게 하여 원자력연구에 큰 도움을 주는 열의도 보였다.


1967년 원자력청 원자력연구소 8대 소장으로 취임하였으며, 재임시에는 동위원소생산과 중성자회절 및 산란실험연구 등에서 갈망하던 부족한 원자로 열중성자 선속을 조금이라도 해소시키기 시키기 위하여 100kW TRIGA-II의 출력을 250kW로 높이는 Project(책임자 김동훈박사)를 우선 시행하도록 하였으며, 당시 로심설계와 열변환설계등은 로공학부 팀이 자체적으로 해결하도록 추진하였고, 최종 250kW 열출력을 갖는 TRIGA-II 연구용 원자로 출력증강 project를 성공리에 완료하였다. 한편 더욱 도약하는 원자력연구를 도모하기 위하여 MW급의 연구용 원자로의 설치를 계획하였으며, 이상수소장님은 선정위원회를 직접 주관하시고, 계약과 설치의 바쁜 시간을 보낸 후 당시로서는 가장 한국 실정에 적합한 2MW급 TRIGA-III를 제2호기 연구용 원자로를 확보하는데 큰 역활을 하였다.


1970년에 원자력청장에 취임하면서 1967년부터 활동하여 왔던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에 한국교차대표 등으로 국제활동을 적극화 하였으며, 많은 원자력선진국의 국제적 인사들과도 폭 넓은 교류를 가짐으로서 한국의 원자력연구 및 산업적 연구사업에서의 국제협력과 교류증진 등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 1970년 10월에는 국내 최초로 IAEA와 원자력연구소가 공동주체하는 ‘개발도상국에서의 방사선가공처리기술’이라는 국제회의를 유치하고, 서울 타워호텔에서 한국, 미국, 프랑스, 일본, 인도, 파키스탄, 호주, 타이완, 태국, 필립핀, 싱가폴 등 11개국의 28명의 대표참가자와 발표자, 80여명의 원자력관계 국내 참가자와 함께 5일동안 방사선가공처리기술과 연구에 관한 의미있는 국제학술회를 개최하여 한국의 원자력을 해외에 알리는 홍보와 교류의 효과 등 유치의 큰 성과를 얻었다. 한편 이상수청장님은 대단위 방사선 조사시설확보를 위하여 미국원자력위원회(US-AEC) 위원장인 T.G.Seaborg박사와 긴밀한 접촉을 가지면서, UNDP자금과 내자지원을 받아 10만 Ci Co-60 Gamma선 조사시설 확보하고 승인을 받는 사업을 완수 하였다.


1971년 정부는 국내 고급 과학기술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거대한 사업의 하나로 정부출연 기관으로 한국과학기술원(지금의 KAIST, 설립자 대통령)의 설립을 확정하고, 초대원장으로 이상수박사님을 임명하였으며, 따라서 이박사님은 11년간의 공릉동의 원자력연구소에서의 연구와 관리의 많은 기여와 아쉬움을 뒤로 하시고, 또 하나의 중대한 국가적 과학기술사업을 위하여 한국과학원으로 자리를 옮기여 근무하게 되였다.


정부는 한국과학원의 부지로 홍릉의 돌산 한 기슭을 배정 하였고, 이상수원장님은 초창기 몇 안되는 교직원과 함께 과기원 건설업무, 조직, 예산계획, 교수충원, 교과 및 교무계획, 연구 및 교육기자재구입, 제반운영규정등 교육기관으로서 반드시 갗추어야 할 산적한 업무를 혼신의 힘을 다하시며 빈틈 없이 수행하였다. 1973년 마침내 첫 입학생을 갖게 되였고, 계속 육성 시키므로서 지금의 한국과학기술원을 명문의 과학기술의 교육과 연구의 터전을 이루는데 더없이 큰 기여를 하였다. 1989년에 이르러서는 원내에서 6대 과기원 원장으로 재차 추천되어서 성숙된 과기원을 이룩하는데 남다른 기여와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이상수박사님은 과학기술원 물리학과 교수로 봉직하면서, 전공인 광학분야에 대한 교육과 연구에 더욱 심도 있는 열정을 쏟으셨으며, 기초와 응용연구 그리고 산학연협동연구과제 사이의 고리를 넓게 그리고 확실하게 수행 함으로서, 과기원 본연의 창립의 뜻을 잘 지켜 주기도 하였다. 기하광학, 파동광학, 레이저광학, 양자광학등의 광과학의 전과목들을 오랫동안 직접 강의하였을 뿐 더러, 석박사과정의 젊은 학생들이 교육과 연구과정에서 이론과 실험을 함께 겸비하는 교육방침을 지키므로써 유능하고 유망한 전문고급과학자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20년을 넘는 과학기술원 교수로 근무하시면서 석사 100여명, 박사 50여명을 배출하였으며, 지금 40~50대 이르른 이들은 전국 대학과 연구소 그리고 산업체에서 교수로 또는 핵심연구요원으로 교육과 연구에 괄목할 만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아마도 이들이 배출한 2세대의 석박사를 합치면 수백명을 넘는 광과학기술 요원들이 국내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이상수박사님은 연구소와 과학기술원에 근무하면서 발표한 전문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만도 220편을 상회하며, 파동광학, 레이저광학, 양자광학 등 전문저서 6권과 광학, 양자전자공학 등 번역서 7편 그리고 정부출연연구비, 특수연구기관 그리고 기업체 연구소 등과의 위탁연구과제 수행에 따른 80여편 이상의 연구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주옥 같은 연구업적은 지금도 중요한 연구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상수박사님은 국내외 학회와 학술단체에서의 봉사에도 대단한 활동을 하였다. 그간의 주요활동만 열거하면, 국내에서는 1981년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종신), 1982년 한국물리학회 회장, 1983년 과우회 부회장, 1984년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 부회장, 1989년 한국광학회 초대회장(현재는 명예회장), 한국원격탐사학회 회장, 1990년 서울평화상 심사위원, 1994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부원장(창립이사), 국제적 활동으로는 1981년 국제광학위원회(ICO) 한국위원장, 1991년 AIT공대(Bangkok) 이사, 1992년 UN대학(Tokyo) 이사, 1995년 ICO 부회장, 1995년 미국광학회(OSA) Fellow(종신), 1997년 국제광공학회(SPIE) Fellow(종신), 영국물리학회(IOP) Fellow(종신)로 활동하고 있다.


이상수박사님은 위와 같은 교육과 연구의 성과를 정부와 학계에서 항상 높이 평가 받아, 대한민국 모란장(1979), 대한민국 과학기술 대통령상(1982), 성곡학술문화상(1989), 대한민국 문화훈장 모란장(1982), 성봉상(한국물리학회 1992), 인촌상(2000), 대한민국 문화훈장 무궁화장(2000) 등과 학계에서의 공로상을 여러회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상수박사님은 1925년10월4일 부친 이대벽(李大闢)공과 모친 박수암(朴壽岩)여사 사이의 차남으로 출생하시어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하였으며, 1955년 사모님이신 서숙원(徐淑源)여사(약학사, YWCA 이사)와 결혼하셔서 슬하에 두 아드님과 세손을 두시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계시며. 두 아드님도 모두가 과학기술계에서 교수와 연구원으로 봉직하고 있다. 또한 오래전 일이지만 이박사님이 평소의 가득한 효심으로 양친을 섬기는 모습을 필자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연구와 교육자로서, 기관장으로서, 학회장으로서 50여년을 한결 같은 신념으로 지내 오신 이상수박사님은 후진 양성에서는 창의적이고 가시적인 지식만을 터득하도록 지도하여, 모두가 확실한 자립심을 가추는 인재가 되도록 인도하였고, 기관장으로는 정직성과 책임감 그리고 화합에 소신을 두고 직무를 완수해 오셨습니다.


요지음은 학술원회원으로, 한국과학기술원 명예교수로서 그리고 한국광학회 명예회장으로서 비교적 적은 업무를 감당하시면서, 계속 후진들과의 교신을 가지며 평화로운 노년기를 보내고 계시다.


이상수박사님은 이 시대가 꼭 필요로하는 학자로서, 과학기술계의 선도적 지도자로서 필자를 비롯한 많은 후진들은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것이다.



작성 - 2005년 12월 박 대 윤( 인하대 명예교수)



추모사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비보입니까! 갑작스럽게 전달 된 이상수 교수님의 타계 비보는 도무지 믿기 어려웠습니다. 차라리 부정하고 싶었었습니다. 어찌하여 교수님께서는 저 사랑스런 아들 며느리,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애지중지 하시던 손자손녀, 친지들, 또한 늘 커다란 울타리가 되어 지켜 주시던 제자들을 다 뒤로 던져버리시고 이리 갑자기 떠나시면 저희들은 어떤 길을 가라는 말씀이십니까? 얼마 전 박대윤교수님과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도 제자들을 걱정하시던 것이 생생합니다. 그것이 교수님과 마지막 만남이라니 너무나도 애통하고 가슴이 막혀 교수님의 영면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제가  1973년 3월 한국과학원 학생으로 입학하면서 교수님과 사제의 연을 맺은 지 벌써 37년이 지났습니다만  아직도 그때의 근엄하셨던 교수님의 모습이 엊그제 같이 생생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저희에게 학문적인 지식의 가르침은 물론이고 어떻게 이 사회에서 한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몸소 행동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원자력연구소 소장, 원자력청장, 한국과학원 초대 원장을 역임하시면서 항상 원칙과 규칙을 가장 중시하셨던 것을 여러 사람을 통하여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희 학생에게는 상당히 엄격하시어서 아침8시부터 저녁9시까지 실험실에서 함께 실험을 하시면서 독려하셨습니다. 또한 실험실에서 못하나 종이 한 장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 하심은 물론 몸소 근검절약 생활을 보여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소위 요즈음 말하는 사회적 약자인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나 운전기사, 기능원에게는 한없이 다정하시고 너거럽게 대하시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삶의 가르침을 배웠습니다만 비록 짧게 산 저희지만 그러한 삶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한국물리학회장, 한국과학기술원장, 초대한국광학회장 등을 역임하시면서 우리나라 물리학 특히 광학분야를 반석위에 올려 놓으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1959년 영국의 Imperial College에서 광학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자로서 국내에 광학의 씨를 뿌리시고 가꾸셨습니다. 또한 국제광학위원회 등의 국제학회를 통하여 한국의 학문적 지위를 높이심은 물론 후학들의 국제적인 활동무대를 튼튼히 닦아 주셨습니다.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로 22년간 재직하시는 동안 교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200여명의 저희 제자들의 조그만 발로는 교수님의 크나큰 족적을 도저히 채울 수 없기에 더욱 안타깝고 비통합니다.

제자들을 항시 인자하게 이끌어 주신 교수님의 모습을 이제 저희는 기억 속에서나 찾아뵈어야 하는 아쉬움을 저버릴 수가 없습니다. 저희 어린 제자들에게는 교수님이 태산보다도 높고 바다 보다 넓은 저희들의 버팀목이셨는데 마지막 가시는 길 지켜드리지 못하여 죄스러운 마음 이루 형언할 수 없습니다. 
교수님 저희 제자들은 교수님의 훌륭하신 선비정신과 인자하신 품격, 빛나는 업적을 잊지 않겠습니다. 교수님을 잃은 저희는 이제 억지로 눈물을 거두렵니다. 교수님 몇 달전 먼저 가신 못내 애통해 하시던 사모님 곁에서 이승에서 못다 하신 사랑을 나누시면서 영생을 함께 하시기를 저희 제자들은 간절히 빌겠습니다.

2010년 5월 10일
불초제자 이민희

인하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Copyright (c) Sang Soo Lee, 이상수

+ Recent posts